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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한담

    도솔가 - 월명사(月明大師)~~글쓴이 : 보산 정용장 등록일 : 2009.04.04 <12:35>

    페이지 정보

    본문

    兜率歌(도솔가)

                                                          월명대사(月明大師)
     

    오늘 이에 "산화"의 노래 불러
    뿌리온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을 심부름하옵기에 
    미륵좌주를 뫼셔라.
                                (梁柱東 해석)

    오늘 이에 산화 불러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에 부리워져
    미륵 좌주 뫼셔 나립하라. (벌려 늘어서라)               
                                    (김완진 해석)


    今日此矣散花唱良(금일차의산화창량)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散花歌)」를 부르며

    巴寶白乎隱花良汝隱(파보백호은화량여은)
    푸른 구름 위로 한 송이 꽃을 뿌려 보내노라.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직등은심음의명즐사의악지)
    은근하고 정중한 곧은 마음이 시키는 일이거니

    彌勒座主陪立羅良(미륵좌주배립나량)
    멀리 도솔천의 부처님[兜率大僊]을 맞이하거라.



    요점 정리
    작자 : 월명사(月明師)
    연대 : 경덕왕 19년(760)
    성격 : 주술적, 불교적
    형식 : 4구체
    주제 : 산화공덕(散花功德)
    표기문자 : 향찰
    특징 : 나라를 편안하게 하자는 뜻에서 부른 노래
    출전 : 삼국유사


    내용 연구
    산화 : 불교의 제식에서 범패를 부르며 꽃을 뿌리는 의식
    블어 : 불러. '블다>불다'는 원순모음화
    고자 : 꽃아. 꽃이여. 곶(명사)+아(호격)
    미륵좌주 : 미륵불, 앞으로 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할 미래불.


    이해와 감상
    월명스님과 도솔가
    하늘에 뜬 두개의 해를 해결하다.

    경덕왕(景德王) 19년 경자(庚子, 790) 4월 초하루였다.
    갑자기 해 두 개가 나란히 나타나
    열흘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자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散花功德 : 꽃을 뿌리는 행하는 공덕)을 지으면
    이 괴변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조원전(朝元殿)에 단을 깨끗이 쌓은 뒤
    임금은 청양루(靑陽樓)에 거동하여
    인연이 있는 승려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이때 월명사(月明師)가 밭두둑으로 난
    남쪽 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중이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 단을 열고
    기도하는 글을 짓도록 하자 월명사가 아뢰었다.

    “저[貧道]는 그저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하는 자이오라
    겨우 향가(鄕歌)만 알 뿐이고 성범(聲梵)에는 서투릅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일단 인연이 있는 승려로 뽑혔으니 향가라면 어떻겠는가.”
    이에 월명이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바쳤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오 이 散花 블어
    고자 너는
    고 命ㅅ 브리디
    彌勒座主 뫼셔롸 <梁柱東 解讀>

    이것을 다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散花歌)」를 부르며
    푸른 구름 위로 한 송이 꽃을 뿌려 보내노라.
    은근하고 정중한 곧은 마음이 시키는 일이거니
    멀리 도솔천의 부처님[兜率大僊]을 맞이하거라.

    지금 세간에서는 이것을
    「산화가(散花歌)」라 부르지만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
    「산화가」는 따로 있는데 그 글이 길어 싣지 않는다.

    그 뒤 곧 해의 괴변은 사라졌다.
    왕이 이것을 가상하게 여겨
    품다(品茶 : 품질이 좋은 차)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하사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동자(童子) 하나가 나타났는데,
    외모가 곱고 깨끗하였다.
    동자는 공손히 차와 염주를 받들더니
    대궐 서쪽 작은 문으로 나갔다.

    월명은 그를
    내궁(內宮)에서 온 사람인 줄 알았고,
    왕은 스님을 따르는 시동으로 여겼다.
    그러나 다시 다져보니 모두 틀린 생각이었다.

    왕은 아주 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쫓도록 하였다.
     쫒아가보니 동자는 내원(內院) 탑 속으로 숨었고,
    차와 염주는 남쪽 벽에 그려진 미륵상 벽화 앞에 놓여 있었다.
    월명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이렇게
    미륵보살을 감동[昭假[소격] : 밝게 감동시킴]시켰던 것이다.

    조정이든 민간이든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왕은 더욱 공경하며 다시
    비단 100필을 주어 더욱 큰 정성을 보여주었다.

    월명스님은 사천왕사에 살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일찍이 달밤에 피리를 불며 길을 가면
    달이 그를 위해 운행을 멈추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 길을 월명리라 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숭상한 지가 오래됐는데,
    대개 시가와 송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연스님은 팔만대장경 조성에 책임자로 참관하고,
    국사라는 칭호가 중국(원나라)과 같다고 해
    국존이라 부를 정도로 민족적 자신감이 높았다.

    그런 일연스님이 보기에
    고려말 성행하기 시작한 유학보다
    민족 고유의 정신이 담긴 향가가 더욱 소중했다.

    월명스님은 바로 그런 스님이다.
    스스로 “사대부가 즐기는 범성은 잘 못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노래인 향가를 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에서 월명스님의 민족적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려던
    일연스님에게 월명스님의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우리의 문학을 잃으면 우리의 정신도 잃어버린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통해 말하고 있는 일관된 주장이다.
    어쩌면 일연스님은 평생을 공양하던
    어머니를 그리면서 이 글을 인용했을지도 모른다.

    월명스님의 ‘제망매가’는
    향가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먼저 죽은 누이를 기리는 애절한 마음을
    승려라는 본분사에 맞춰 승화시켜내고 있다.

    월명에게는
    일찍 죽은 누이동생이 있었다.
    그녀를 위해 재를 올렸는데,
    그때도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그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고,
    바람에 날린 지전(紙錢)은
    서쪽으로 날아가 없어져 버렸다.
    향가는 다음과 같다.

    生死路
    예 이샤매 저히고
    나 가 다 말ㅅ도
    몯다 닏고 가 닛고
    어느  이른  매
    이 저 딜 닙다이
    가재 나고
    가논곧 모 온뎌
    아으 彌陁刹애 맛보올 내
    道닷가 기드리고다. 

    "삶과 죽음이 길이
    예 있음에 두려워
    너는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이른 가을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가지에 나고서
    가는 곳도 모르는 구나
    아아 극락에서 만날 날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 <梁柱東 解讀>

    월명은 항상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어느 날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 큰길을 지나가려니
    달이 그를 위해 가지 않고 멈춰서 있었다.
    이 때문에 그곳을 월명리(月明里)라 불렀다.
    월명사도 이 일로 해서 명성을 떨쳤다.

    월명사는 능준대사(能俊大師)의 제자였다.
    신라 사람들이 향가를 받들었던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풍습이었는데,
    대개 시송(詩頌)과 같은 종류다. 때문에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경우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찬(讚)한다.

    바람은 종이돈을 날려 죽은 누이동생의 노자를 삼도록 했고
    피리는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姮娥)가 그 자리에 몀추었지.
    (姮娥 : 달에 산다는 미녀 이름)

    도솔천(兜率天)이 하늘 따라 멀리 있다고 말하지 마오
    만덕화(萬德花)가 한곡조 노래를 맞이했구나.
    (萬德花 : 만덕은 부처님의 덕. 부처님의 덕을 상징하는 꽃)


    심화 자료
    월명사(月明師)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의 승려
    도솔가와 제망매가를 지음

    배경 설화
    신라의 향가(鄕歌).
    760년(경덕왕 19) 4월 초하루,
    해가 둘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
    왕명에 따라 연승(緣僧)으로 뽑힌
    월명사(月明師)가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산화가(散花歌)>도 부르고 이 노래도 지어 부르자,
    괴변이 곧 사라졌다는 유래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에 전한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미륵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며,
    국가적 의식에서 미륵 보살의 하강을 기원한 노래로 볼 수 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은 이 노래를
    <산화가>가 아니라 <도솔가>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삼국유사>에
    이두(吏讀)로 된 4구체(四句體)의 원가(原歌)와
    한역시(漢譯詩)가 함께 실려 있어,
    향가의 해독(解讀)과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조선고가연구>(양주동)의 해독문을 보면
    "오이에 散花 블어/
    고자 너는/
    고  命ㅅ브리디/彌勒座主 뫼셔라"이다.

    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로서,
    미래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떨기 꽃을 통하여 미륵불을 모시겠다는 뜻이므로,
    전형적인 찬불가(讚佛歌)이다.

    도솔가
    신라 경덕왕 19년(760)에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향가.
    ≪ 삼국유사 ≫ 권5 월명사 도솔가조에 전한다.
    760년 4월 초하룻날 두 해가 함께 나타나서 10여일간 없어지지 않자,
    왕이 일관 ( 日官 )의 청으로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였다.
    왕이 청양루에서 연승(緣僧)인 월명사를 만나
    단(壇)을 열고 계(啓)를 지으라 하여,
    월명사가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형식은 4구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 삼국유사 ≫ 의 띄어쓰기에서는 3분절되어 있다.

    유창균(兪昌均)은
    "오 堪 이 倨 散花(산화) 브르라/
    돌보 基 본 고라 너흰/
    고 慨 絅 嗜 鏡 命人(명인) 브리아기/
    彌勒座主(미륵좌주) 모리라라." 라고 읽은 바 있다.

    이러한 독법에 의해
    "오늘 이곳에 모든 화랑(花郞)을 부르는 바라.
    (나라의)은총을 입고 있는 화랑 너희들은,
    한결같이 굳은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여기에 미륵좌주를 뫼셔 받들 것이로다." 라고 해석하였다.

    이 작품을 김동욱(金東旭)은
    미륵청불(彌勒請佛)의 불교가요로 보는가 하면,
    김열규(金烈圭)는 <구지가 龜旨歌 >와
    그 성격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즉 김열규는 < 구지가 >를 전통적인 주사(呪詞)에
    직접 맥을 대고 있는 주사적 양식의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한편 김종우(金鍾雨)는
    "미륵좌주" 라는 말을
    낭 · 불융합(郎佛融合)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용어로 보고,
    작품은 순불교적인 가요로 각각 파악하였다.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불린 노래이다.
    합리적 사고로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며, 우회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상계와 인간계의 대응관념으로 보았을 때,
    해는 곧 왕에 대응된다.
    하늘의 두 해 중 하나는 현재의 왕에
    도전할 세력의 출현을 예보해 준다.

    이러한 세력의 출현은 혼돈을 빚고,
    그래서 이 혼돈을 조정할 행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와같이,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기 위하여 행해진 의식이
    산화공덕이고, 이 의식에서 불린 노래가 <도솔가>이다.

    그러나 이 산화공덕은
    순수한 불교적인 관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재래신앙의 차원에서 불교의식을 수용한 상태의 것이다.
    즉, 재래의 천신숭배사상에다 시조강림관념은
    쉽사리 미륵하생관념(彌勒下生觀念)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용되어 미륵좌주로 나타난 것이다.
    거기에 계를 지으라고 함에
    향가로 대신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작품에는
    국가태평 또는 평정을 기원하는 제의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신을 불러내는 말이
    재래 양식 그대로 쓰이고 있다.

    다만 시대적인 상황의 변천에 따라
    불교적인 미륵하생관념이 혼융되기는 하였다.
    즉, 위협적인 모습은
    인심의 순화에 따라 완곡의 표현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명령법이라는 것이
    아직도 작품에 그대로 남아 있어,
    고대 제의에 사용되던 주가적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보살(彌勒菩薩)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보살 가운데 하나.
    미륵은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자씨(慈氏)로 의역된다.
    따라서 미륵보살은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불교사상의 발전과 함께 미래불이 나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 싹트게 됨에 따라
    미륵보살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미륵보살은 인도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서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부처가 되기
    이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는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한 뒤
    56억7000만 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 인을 교화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자세가
    곧 미륵반가사유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삼국시대에
    이 미륵반가사유상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또한 미륵보살을 신앙하는 사람이
    오랜 세월을 기다릴 수 없을 때는
    현재 보살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上生〕,
    또는 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下生〕 염원하며
    수행하는 미륵신앙이 우리 나라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현재 미륵보살이 상주하면서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은
    지족(知足)이라고 번역되는 하늘로,
    지나친 욕심이나 번뇌망상으로 방탕함이 없는 세계이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의 제자가 되는 길은
    관행인과(觀行因果)에 있다고 보았다.
    이 관행은 도솔천의 뛰어난 장엄과
    미륵보살이 수행의 결과로 누리는
    과보의 뛰어남을 관하는 것이다.

    이 관에 수반되는 행으로는
    미륵보살을 경애하는 마음으로
    이미 지은 죄를 참회하는 것과,
    미륵보살의 덕을 우러러 받들고 믿는 것,
    그리고 탑을 닦고 마당을 쓸며
    향과 꽃을 공양하는 등의 일이다.

    우리 나라에는 3000년 설에 입각하여
    미륵보살이 대부분 비바람 아래
    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조상되어 있다.
    ≪참고문헌≫
     彌勒上生經, 彌勒上生經宗要(元曉).(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遺事, 韓國歌謠의 硏究(金東旭, 乙酉文化社, 1964),
    鄕歌文學論(金鍾雨, 二友出版社, 1972),
    鄕歌의 語文學的 硏究(金烈圭 · 鄭然粲 · 李在銑, 西江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 1972),
    新羅詩歌의 硏究(尹榮玉, 螢雪出版社, 1980). 鄕歌批解(兪昌均, 螢雪出版社, 1994).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사의 소리(명상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