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비망록 ~~ 글쓴이 보산 정용장 등록일 : 2009.02.1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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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비망록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주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무소유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 에게는
한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간디-
"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시간
사형수에게는 일분 일초가
생명 그 자체로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다.
마음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련이 앞서야 한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법구경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 진다.
대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回心),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인간의 말은 어디에서 나와야 할까?
그것은 마따히 침묵에서 나와야 한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소음과 다를 게 없다.
인간은 침묵 속에서만이
사물을 깊이 통찰할 수 있고
또한 자기 존재를 자각한다.
이때 비로소
자기언어를 갖게되고
자기 말에 책임을 느낀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이 재앙의 문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기능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의 역기능도 하고 있다.
수도자들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 만을 하기 위해서다.
요한의 첫째 편지
"하느님(부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부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존재의 실상
인간존재에 있어서 기본적인 구조는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수는 없다.
서로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저쪽의 불행이 내게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는 말은
인과관계의 원리이지만,
그것은 또한 모든 존재의 실상이기도 하다.
초기불교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주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무소유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 에게는
한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간디-
"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시간
사형수에게는 일분 일초가
생명 그 자체로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다.
마음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련이 앞서야 한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법구경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 진다.
대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回心),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인간의 말은 어디에서 나와야 할까?
그것은 마따히 침묵에서 나와야 한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소음과 다를 게 없다.
인간은 침묵 속에서만이
사물을 깊이 통찰할 수 있고
또한 자기 존재를 자각한다.
이때 비로소
자기언어를 갖게되고
자기 말에 책임을 느낀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이 재앙의 문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기능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의 역기능도 하고 있다.
수도자들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 만을 하기 위해서다.
요한의 첫째 편지
"하느님(부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부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존재의 실상
인간존재에 있어서 기본적인 구조는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수는 없다.
서로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저쪽의 불행이 내게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는 말은
인과관계의 원리이지만,
그것은 또한 모든 존재의 실상이기도 하다.
초기불교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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