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행자의 진면목" 장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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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불광(佛光) 97년 12월호
빛의샘/ 한해를 되돌아 보니
"참수행자의 진면목" 글· 장휘옥
불교 를 공부하기 시작한 후부터 늘 반신반의 하는 것이 있었다. '오랜 세월 그저 화두만 들고 앉아있다고 해서 과연 진전이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불교에 입문하여 교학을 전공하려했을 때 석남사 인홍 스님께서 "왜 둘러가는 길을 택하느냐, 참선을 하면 담박에 알 수 있는 것을"하고 충고하섰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자나깨나 교리학적으로만 파고 들었다.
그런지도 벌써 이십사오 년, 되돌아 보면 각고의 세월이었지만 불도수행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많은 시간 낭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가로 얻은 것도 있다. 그것은 불교교학은 어디까지나 실천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늦게나마 불도수행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반신반의하던 수행에 대한 의문도 말끔히 해소되었다.
더구나 지난 4월에 입적하신 인홍 노스님의 수행 보습은 분별심이 강한 아에게 참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수행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30여 년 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석남사를 찾았을 때 기억이 난다. 계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인홍 스님께서 대뜸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처사님 따님을 저에게 주시죠" 당황한 아버지는 "글쎄요 대학이나 졸업한 후에요."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후로 노스님은 수시로 출가할 것을 권하셨고 나는 그 말씀이 부담스러워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 뵙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난 1월, 석남사로 노스님을 찾아 뵈었다. 안내하던 시자가 많이 편찮으실 때는간혹 사람을 잘 못 알아 보실때도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소스님 방으로 들어가니 젊었을 때 불호령을 내리서던 당당하시고 근엄한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애기 같은 해맑은 얼굴의 노스님이 상좌스님들의 시봉을 받고 계셨다.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으면서 "스님 누군지 알아 보시겠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알지 그럼 휘옥이를 몰라." 그리고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옆에 앉아 계시던 한 스님께서 "노스님께서 사람을 못 알아 보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오래된 사람은 다 알아 보십니다."하면서 노스님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스님이 간혹 사람을 못 알아 보시긴 해도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하시는일은 없어요. 정말 놀란 일이 있어요.
스님의 병은 고단백질을 많이 드셔야 빨리 회복하시는데 약으로 고기 스프라도 좀 해드리려고 '스님, 고기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스님께서 '아니야 고기는 싫어. 수행에 방해되' 하시는 거예요. 아무런 가식 없이 사시는 말씀 속에도 수행의 철저함이 배어 있음을 알고나니 노스님께서 평생 지키신 계율이 가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시대의 참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에 환희했고, 나도 수행하면 된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노스님께서 직접 좌선 지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신 언약을 재확인하며, 이변 여름방학에는 꼭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무상한 세월은 단 몇 개월을 기다려 주니 않앗다. 노스님과의 이생에서의 인연이 이렇게 끝날 줄도 모르고, 노스님의 지도를 차일피일 미루었던 나 자신의 우매함을 한해를 마무리짓는 시점에서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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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옥님은 51년 생으로 부산대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으며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일본 동경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불교학 개론 강의실1,2>등이 있으며 불교학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빛의샘/ 한해를 되돌아 보니
"참수행자의 진면목" 글· 장휘옥
불교 를 공부하기 시작한 후부터 늘 반신반의 하는 것이 있었다. '오랜 세월 그저 화두만 들고 앉아있다고 해서 과연 진전이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불교에 입문하여 교학을 전공하려했을 때 석남사 인홍 스님께서 "왜 둘러가는 길을 택하느냐, 참선을 하면 담박에 알 수 있는 것을"하고 충고하섰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아, 자나깨나 교리학적으로만 파고 들었다.
그런지도 벌써 이십사오 년, 되돌아 보면 각고의 세월이었지만 불도수행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많은 시간 낭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가로 얻은 것도 있다. 그것은 불교교학은 어디까지나 실천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늦게나마 불도수행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반신반의하던 수행에 대한 의문도 말끔히 해소되었다.
더구나 지난 4월에 입적하신 인홍 노스님의 수행 보습은 분별심이 강한 아에게 참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수행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30여 년 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석남사를 찾았을 때 기억이 난다. 계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인홍 스님께서 대뜸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처사님 따님을 저에게 주시죠" 당황한 아버지는 "글쎄요 대학이나 졸업한 후에요."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후로 노스님은 수시로 출가할 것을 권하셨고 나는 그 말씀이 부담스러워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 뵙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난 1월, 석남사로 노스님을 찾아 뵈었다. 안내하던 시자가 많이 편찮으실 때는간혹 사람을 잘 못 알아 보실때도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소스님 방으로 들어가니 젊었을 때 불호령을 내리서던 당당하시고 근엄한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애기 같은 해맑은 얼굴의 노스님이 상좌스님들의 시봉을 받고 계셨다.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으면서 "스님 누군지 알아 보시겠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알지 그럼 휘옥이를 몰라." 그리고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옆에 앉아 계시던 한 스님께서 "노스님께서 사람을 못 알아 보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오래된 사람은 다 알아 보십니다."하면서 노스님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스님이 간혹 사람을 못 알아 보시긴 해도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하시는일은 없어요. 정말 놀란 일이 있어요.
스님의 병은 고단백질을 많이 드셔야 빨리 회복하시는데 약으로 고기 스프라도 좀 해드리려고 '스님, 고기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스님께서 '아니야 고기는 싫어. 수행에 방해되' 하시는 거예요. 아무런 가식 없이 사시는 말씀 속에도 수행의 철저함이 배어 있음을 알고나니 노스님께서 평생 지키신 계율이 가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시대의 참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에 환희했고, 나도 수행하면 된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 노스님께서 직접 좌선 지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신 언약을 재확인하며, 이변 여름방학에는 꼭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무상한 세월은 단 몇 개월을 기다려 주니 않앗다. 노스님과의 이생에서의 인연이 이렇게 끝날 줄도 모르고, 노스님의 지도를 차일피일 미루었던 나 자신의 우매함을 한해를 마무리짓는 시점에서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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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옥님은 51년 생으로 부산대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으며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일본 동경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불교학 개론 강의실1,2>등이 있으며 불교학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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