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院산책] (16) 석남사 정수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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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院산책] (16) 석남사 정수선원
"선원장 스님께서 정진 중이라 시간을 내실 수 없답니다."
주지 스님이 이렇게 전하면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선원장 스님을 뵐 수 있을 것"이라던 당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탓이다.
참선을 쉬는 방선(放禪) 시간에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랴.
안거(安居)라는 것이 원래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수행하는 기간인 것을… 주지 스님이 애를 써서 선방 사진이라도 찍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선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선방 특유의 분위기가 외부인을 압도한다.
적묵(寂默) 속에 흐르는 선(禪)의 기운….방문이 열리는 소리,누가 들어오는 소리,사진을 찍느라 움직이는 소리에 수좌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불과 2∼3분,서둘러 사진을 찍고 방을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선방의 기운에 압도됐던 답답함이 그제서야 사라진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현덕리의 가지산 석남사(石南寺) 정수선원(正受禪院).석남사는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가 창건한 선찰(禪刹)로 1천2백여년의 선맥을 자랑한다.
한국전쟁 때 전소된 가람을 지난 97년 입적한 비구니 인홍 스님이 복구·증축해 대가람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엄격한 수행가풍으로 국내 최대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조계종이 지난 99년 비구니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석남사에 비구니 참선도량이 처음 생긴 것은 지난 57년.당시 주지였던 인홍 스님이 정수선원을 신축해 비구니 선원을 열면서부터다.
이후 63년부터는 3년을 기한으로 수행정진하는 '3년 결사(結社)'를 도입했고,참선 공부가 어느 정도 익은 수행자들을 위한 별도의 수행공간으로 심검당(尋劍堂)선원을 신축했다.
또 95년에는 수행공간을 더 늘리기 위해 금당(金堂)선원을 새로 마련했다.
그래서 석남사에는 현재 선원이 세 곳이다.
정수선원은 안거에 참여한 수좌들의 수행처로,금당선원은 '결사도량'으로 활용되고 심검당선원은 연로한 스님들이 자유롭게 정진하는 상선원이다.
이중에서도 1년을 기한으로 가행정진하는 금당선원은 입방(入房)조건이 까다롭다.
선원 경력이 5년을 넘거나 다른 선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발을 들일 수 있다.
정수선원의 수행가풍도 엄격하다.
하루 12시간을 수행해야 하고,음력 11월 한 달은 가행정진,12월 첫 일주일은 잠을 일절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해야 한다.
지금 석남사에서 수행 중인 스님은 50명.정수선원에는 25명이 동안거에 들어있고,금당에는 22명이 내년 3월까지 1년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심검당에는 성철 스님의 속가 딸인 불필 스님 등 노장 3명이 정진 중이다.
여기에다 절 살림을 맡아 이들을 지원하는 스님들까지 더하면 석남사의 대중은 80명을 넘는다.
산새들도 잠에서 깨기 전인 새벽 3시.도량석 소리가 삼라만상을 깨우자 스님들은 새벽예불로 하루를 시작한다.
석남사 가풍의 특징은 누구도 새벽예불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새벽예불을 거르면 밥을 굶어야 하는 것은 인홍 스님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주지 도각 스님은 "설마 밥을 굶기랴 싶지만 실제로 밥그릇을 치우는 걸 여러 차례 봤다"고 전한다.
또한 새벽예불 때마다 스님들은 1백8배를 올리며 참회하고 또 참회한다.
예불을 마친 수좌들은 곧바로 참선에 들어 하루 공부를 시작한다.
이윽고 새벽 6시,아침공양 시간이다.
공양간이 따로 있지만 스님들은 모두 대웅전 앞마당 왼편의 강선당 큰방에 모여든다.
법공양(발우공양)을 위해서다.
가사까지 모두 갖춘 스님들이 죽비에 맞춰 게송을 외고,발우를 펴 밥과 반찬 국 등을 나눠 담아 먹는 모습은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그 자체가 수행이다.
갓 선방에 들어온 신참에서부터 선방경력이 오래된 구참이나 연로한 스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일을 분담하는 것도 석남사의 특징.'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청규'(중국 백장 스님이 확립한 선방 규칙)가 그대로 살아있다.
밭 갈고 논 매는 일에서부터 불공,법당 청소,도량 정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임은 돌아가면서 맡는다.
지금도 석남사는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
쌀은 물론 각종 채소류도 직접 길러 먹는다.
올 겨울 김장도 직접 농사지은 배추 2천5백포기와 무로 담갔다고 한다.
석남사 주지 도각 스님은 "일과 공부는 같이 해야 더 잘되는 법"이라고 설명한다.
안거철 모두가 참선에 든 선원의 뜰은 맑고 고요하다.
발자국 소리마저 죽여가며 정수선원을 나서는데,주련 한 구절이 마음을 끈다.
"막위무심운시도(莫爲無心云是道·무심을 일러 도라고 하지 마라) 무심유격일중관(無心猶隔一重關·무심도 오히려 한 겹이 막혔느니라)." 무심을 덮고 있는 그 한겹마저 걷어낼 공부의 끝은 어디일까.
울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입력시간: 04/0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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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