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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석남사 종립특별선원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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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2000-01-01 1749호
    정수원·금당선원
     
    ‘우뢰같은 침묵’ 찾아
    門없는 관문 타파하는 選佛場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자신을 향한 침묵이
    선방에 감돈다
    ‘조사와 부처를 죽이자’
    큰 길에는 문이 없다지
    그렇지만 길은 어디에도 있지
    이 철벽을 뚫고
    온 천하를 걸으리라

    “…….” “…….”
    휘이이잉, 휘이이잉.
    안(內)은 적막, 밖(外)은 매서운 겨울 바람. 무거우면서 날카로운, 자신을 향한 침묵이 석남사(石南寺) 선방 정수원(正受院)과 금당(金堂)을 감돈다.
    보이지 않는 번뇌가, 정진하고 있는 스님들(40여명)을 괴롭힌다. 질퍽거리는 땀 같은 무명, 아 오히려 오한이 더 좋을 듯. 추위도 찬바람 소리도 오히려 번뇌. “바람이 왜 불지”라는 생각도 무명의 싹. ‘좋은 생각’조차 어둠을 키워주는 잡념. 모든 것을 자르자. ‘이 뭣고’라는 ‘말 머리(話頭)’만 밟자. ‘조사와 부처를 죽이자’. 아니 이런 생각도 내지 말자.
    가지산(迦智山) 석남사. 우리 나라에 선을 본격적으로 전한 도의(道義)스님이 창건한 천년고찰. 784년 당에 들어가 강서 홍주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이은 도의스님은 신라 헌덕왕 13년(821) 귀국했다.
    각지를 돌며 설법했으나 선법(禪法)을 믿는 이 적어,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들어가고 만다. 거기서 염거스님에게 법을 전했고, 염거(廉居)스님의 제자 보조체징(普照體澄)스님이 가지산 보림사를 짓고 종풍을 떨치게 된다.
    정수원과 금당선원 스님들. 그들은 바로 가지산문 개창자 도의국사의 후손들, 지금 ‘문 없는 마음의 관문(無門關)’을 뚫기 위해 한창 자신을 사르고 있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 가운데 핵심은 마음(佛語心爲宗)” 그 마음을 찾기 위해.
    그러나 어떻게 뚫어야 하나. “선을 공부하자면 조사가 세워놓은 관문을 뚫어야 하고, 깨달음을 얻자면 모든 생각의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조사의 관문이 뚫리지 않고, 생각의 길목이 차단되지 않으면 너는 풀잎이나 덤불에 기생하는 허깨비나 다름없다” 대체 ‘조사의 관문’이란 무엇인가.
    한 달 전부터, 아니 출가 이래 자신에게 떨어진, 자신을 향한 가장 큰 의심. ‘부처란 무엇인가.’ 의심이 의심을 품어, 마침내 스스로 풀리겠지(疑團獨露). 그렇게 조심(操心)하기 무려 몇 년이던가. 다시 침잠한다. 나와 피안마저 잊어버리는 ‘우뢰 같은 침묵’ 속으로. 그때, 죽비가 울린다. 포행시간이다.
    겨울 햇살은 의외로 따뜻하다. 석남사 계곡 옥류동의 사나운 바람과 달리. 정수원·금당 앞마당, 언제나 스님들이 포행하는 곳. 때문에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곳. ‘움직이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일상의 모든 행동 속에서 자기를 찾아야지.
    포행은 따라서 휴식 아닌 새로운 수행. 이 생각 또한 잡념이련가. 잡혔던 마음의 꼬리가 계속 주변을 맴돈다. 처음 사방이 깜깜한 철벽같았던 공안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도반이 됐다. 내가 화두고 화두가 나인, 장자가 나비고 나비가 장자인 그런 상태까지는 아직…….
    “딩 딩 딩 ……” 종소리가 사위를 가른다. 예불 시간. 벌써 아침인가. 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몸서리치게 잡아도, 잡았다 싶으면 도망치고, 포기하면 나타나는 ‘한 물건’. ‘그 놈’ 때문에, 아침 예불시간이다.
    정진도 모자라,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계속했지만, ‘한 물건’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조사의 관문을 뚫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가.’
    도량 청소.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선방 스님들은 오늘도 비를 잡았다. 청소 중에도 일어나는 생각은 오직 하나. 삼백육십 혼신의 뼈마디와 팔만사천 혼신의 털구멍을 의문의 덩어리로 뭉쳐야지. ‘이 뭣고’, 아니 주어진 화두에 매달리리라.
    청소하면서 다짐 또 다짐한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성성(星星)히 여일(如一)하게, 시뻘겋게 단 쇳덩이를 삼킨 것처럼,
    아무리 토하고 뱉아도 나오지 않는 의문의 불덩이로 그 동안의 그릇된 문자, 잘못된 공부를 말끔히 떨쳐 내리라” 그래서 서역의 28조사와 중국의 여섯 조사도 내 앞에서 꼼짝 못하게 해야지. 빗자루에 쓸려 가는 먼지처럼 번뇌를 오늘에는 씻어 내고, 무명 없는 하늘을 보리라.
    다시 입선(入禪). 시작이다. 조심(彫心) 조심(操心) 침묵 속으로……. “큰길에는 문이 없다지. 그렇지만 길은 또 어디에나 있지. 이 관문을 뚫고, 온 천하를 당당히 걸으리라(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그러나 부처님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전한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 ‘불립문자’ ‘교외별전’은 어디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직지인심’의 역사는 갈대 잎을 타고 북위 수도 낙양에 나타난 한 서역승(보리달마)으로부터 시작됐다.
    소림사의 면벽, 팔을 자르는 구도행 등을 거쳐 남방 출신의 한 행자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는 선.
    혜능선사(638~713)에 도달해 새로운 동력을 받은 선은, 이후 일어나는 적지 않은 법난을 물리치고, 독특한 중국불교의 전형으로 자리잡아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든다. ‘선학의 황금시대’를 연출한 무수한 선사들, 동토에 선의 기운을 차게 만들었든 구산선문의 조사들을 뛰어넘어 선은 마침내 오늘 석남사에 도달했다. 역대 조사들이 목숨걸고 지켜온 ‘열반묘심’ ‘정법안장’은 그러나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죽비 소리가, 포행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다시 울린다. 명증(明證)해진 마음을 추스려, 도반들이 도반들을 뒤따른다.
    한 바퀴, 두 바퀴, ……. 선방 마루에 걸터앉는다. 가지산 옥류동 물소리는 여전하고, 잡히지 않는 마음도 여전하다. 언젠가는 안과 밖이 합쳐지는 순간이 오겠지. “마른 하늘에 벼락이 때리고 대지의 초목군생이 화들짝 놀랄” 그런 동시(同時)의 순간은 오겠지.
    청규 따라 움직이는 이런 선방생활이 제삼자에겐 똑 같아 보이리라. 아침예불, 도량 청소, 아침 공양, 입선, 포행, 사시예불, 점심공양, 입선, 포행, 가행정진, 저녁예불, 입선….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하나도 다를 것 없다. 내적 변화는 그러나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겉으론 비슷하나, 속으로는 천양지차. 수행을 통해 무수한 변화를 겪은 새로운 나다.
    금당의 한 스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참선을 하면 모든 알음알이가 씻겨지고, 자신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화두와 자기가 하나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것이 선입니다. 백 마디의 경전을 읽어도 그것은 자기 것이 안됩니다. 자기가 직접 실참하는 것만 못합니다. 변화는 항상 정중동(靜中動)의 순간에 오지요”
    똑 부러진다. 특히 “수행에 참선 만한 것이 없다”는 대목에선 힘이 넘친다. “언구(言句)로 모든 것을 풀고 모으는(解會) 문자법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났다. 가지산문 1세 조사인 도의스님이 창건한 석남사. 그 석남사의 납자이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넘친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마치 아름다우면서도 섬세하고, 힘있는 도의국사 부도처럼. 부도가 석남사에 있다는 것이 납자들에겐 긍지이자 자랑이리라.
    정수원과 금당은 항상 침묵을 휩싸고 돈다. 떨어지는 나뭇잎도 그곳에선 숨죽이고, 생각 없이 울어대는 산새조차 소리를 가다듬는다. 거기서 발현되는 선기(禪機)는 그러나 석남사와 가지산을 싸고 남는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심정으로,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용맹정진 하는 정수원·금당 스님들. 그들이 뻗어내는 선기는 사바를 비추는 해탈의 빛으로 회향될 것이다.
    ‘가지산 석남사’라는 편액이 달린 산문을 나서면서 다시 석남사를 돌아봤다. 문(門) 없는 진리의 관문을 뚫고 있는, “칼 한 자루 꼬나 잡고 곧바로 뛰어들어 여덟 팔 가진 나타(神將)와 싸우는” 스님들 모습이 그대로 다가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얻고, 육도(六途)·사생(四生)을 유유히 자적하는 기쁨을 온 얼굴에 가득 채운 채, 천하를 당당히 걷는 석남사 납자들. 그 모습, 언젠가는 가지산 넘어 천하를 덮으리라.
    석남사 = 글 趙炳活기자 bhcho@buddhism.or.kr
    사진 金亨周기자 cooljoo@buddhis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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