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립특별선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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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001-01-01 1796호
봉암사 석남사2곳
봉암사 태고선원과 석남사 정수선원이 있다.
봉암사에 근대선원이 다시금 부흥한 것은 1947년이다.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봉암사결사는 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스님, 자운스님, 우봉스님 등 4명의 스님이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에 들어갔다. 이후 청담, 향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성수, 혜암, 도우 스님등 20명이 결사에 참여했으며 대중은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제정하여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오늘날 수행의 근간을 세웠다.
석남사선원은 1957년 당시 주지였던 인홍스님이 퇴색해 가던 가람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정수선원을 신축하여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수행도량으로 삼으면서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석남사선원은
정수선원, 금당선원, 심검당선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수선원에서는 일반정진, 금당선원에서는 결사도량으로
가행정진, 심검당선원에서는 노스님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진하고 있다.
석남사 선원의 가풍은 안거 한철을 나는 것이 아니라 3년결사 원력을 세워 수행정진하고 3년후 또다시 원력을 세워 3년결사를 입재한다.
또한 석남사는 수행가풍, 청규, 대중공의하는 불교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청규를 엄수해야 한다.
밭 갈고 논 매는 일부터 불공과 대중공양하는 일, 법당 청소, 도량 정비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이 돌아가면서 소임을 맡는다.
중요사항은 공의에 의해 결정하며 정해진 일은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가풍이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