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문 2105호,
한국불교를 일컬어 흔히 통불교(通佛敎)라고 하지만 참선(參禪) 수행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사찰에서 참선수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을 선원이라고 한다.
선원의 기원은 부처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선원이라는 명칭은 없었다. 하지만 선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안거의 기원이 부처님 당시부터 시작됐다. 부처님 당시 비구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탁발을 하다 우기(雨期)가 되면 한 곳에 머물며 안거를 지냈다. 당시에는 4월15일부터 7월15일 까지 한 곳에 머물며 좌선을 하거나 교리를 연구했다.
매월 보름과 그믐에는 포살을 하며 자신의 잘못을 대중들에게 참회하고 공부를 점검받기도 했다. 부처님 당시의 전통은 오늘날 한국 선원에서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부처님이 입멸에 든 후 부파불교 및 중국불교에서는 불교 교단이 일정한 사원과 토지 등을 소유하고 그 재산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탁발은 꼭 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행자들은 연중 사원에 상주하며 선과 경, 논 등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10월16일부터 이듬해 정월 1일까지 한 차례 더 동안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안거의 전통을 선종에서 이어받아 선원은 중요한 수행처가 되었다.
중국에서 선종은 백장회해(749~ 814)가 선종청규(淸規)를 제정하여 선종교단을 독립시키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완성되었다. 〈전등록〉제6권에 수록되어 있는 〈선문규식〉(禪門規式) 등에 따르면 선원은 이전의 사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즉 부처님을 대신해서 선원의 법을 대표하는 방장스님이 상당설법하며 불전을 세우지 않고 법당만을 설치한다. 대중은 함께 기거하며 직무를 분담하고 규범을 어기면 엄격한 벌칙이 가해진다.
백장선사는 당시 선종의 수행이 전통적인 율원에 적합하지 않아 대소승의 계율을 절충하여 수행생활에 적절한 규범을 세워 청규로 엮었다. 수행생활에 맞게 선원의 구조도 개조,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법당(法堂)만 건립했다. 도안(道眼)을 갖춘 존경할 만한 덕있는 고승을 장로라고 부르며 특별히 방장에 거주토록 했다. 방장은 법당의 단상에 올라 설법하여 불조(佛祖)의 정법을 거양토록 했다고 한다. 이는 장로가 불조의 정법(正法眼藏)을 이은, 살아있는 불조로 모시고 지도받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장로가 법당에서 승좌설법(陞座說法)할 때에는 직무를 맡은 대중이 나란히 서서 법문을 듣고, 빈주(賓主)의 선문답으로 종비를 논할 때에도 법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해야 했다. 주지의 상당설법과 선문답이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선종어록(禪宗語錄)이라는 독자적인 장르가 출현하게 되었다.
또 수행자의 숫자나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승당(僧堂)에서 함께 생활하며, 좌석의 배치는 안거년수(安居年數)에 따라 구분하였다. 모두 긴 선상(禪床)에서 좌선하였고, 승당의 구조도 수행생활에 적합하도록 간단히 설치되었으며, 아침에는 죽, 낮에는 밥으로 하루 두 끼만을 먹는 절약과 검소한 수행자의 생활이었다. 직무는 반두(飯頭) 채두(菜頭) 유나(維那) 전좌(典座) 직세(直歲) 등 10종으로 나누어 각기 맡은 직책을 충실히 하였다. 또 보청(普請)의 법을 실행하여 상하의 힘을 합쳐 장로를 비롯한 전 대중이 평등하게 사원의 작업이나 생산노동에 동참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보청(普請)의 법은 불교의 역사상 최초의 일로서 획기적인 혁신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선종은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말에 전래됐다. 도의국사가 중국의 남종선을 도입 한 후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설치돼 이후 한국불교의 근간을 형성했다. 선종의 도입과 함께 전국에 수많은 선원이 세워졌고, 한국불교의 의식이나 스님들의 일상도 그에 맞게 변모했다.
선원의 교육목표는 불교의 진리를 좌선을 통해서 내관(內觀)하고 스스로를 살펴 자기의 심성을 철견함으로써 견성성불하며 중생 제도를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일정한 교육기간이 정해져 있는 강원과는 달리 선원은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의의가 더 컸다. 더욱이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사(修禪社)를 세우고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창한 이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 강원은 선원의 예비문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어 강원수료자가 선원에 들어가 평생수행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선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강원의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여 비구계를 받은 20세 이상이 된 자 에게 부여되었다.
그리고 하안거는 4월15일에 시작하여 7월15일에 끝내고, 동안거는 10월15일에 시작하여 1월15일에 끝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결제안거 90일로써 법랍 1세로 하고, 법랍은 하안거의 수에 의하여 계산하도록 하되, 다만 본사의 허락을 얻으면 동안거도 법랍에 가산할 수가 있었다. 선원에서의 하루 수행시간은 8시간 이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조선승려수선제요〉에 의하면 해인사 퇴설당 선원은 하안거 때 8시간, 동안거 때 11시간, 월정사 및 범어사의 선원은 하안거.동안거 모두 10시간씩, 대원사는 8시간, 파계사는 6시간으로 되어 있다.
수행방법은 자선자수 자력자식(自禪自修 自力自食)을 기본으로 하며, 안거는 좌선을 위주로 하되 선리(禪理)를 연구하고 대.소승율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선(禪)수행의 습독서로서는 〈금강경〉.〈능엄경〉.〈선요〉(禪要).〈 절요〉(節要).〈도서〉(都序).〈서장〉(書狀).〈치문〉.〈자경문〉(自警文).〈초심〉(初心).〈염송〉(念誦) 등이 채택되었다., 권장 경전으로 〈화엄경〉.〈원각경〉.〈법화경〉.〈기신론〉 등을 배우기도 했다. 또한, 조실(祖室)스님이 설법하는 중에는 일체의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의심이 있을 때는 설법이 끝난 뒤 방장실에 들어가 질문할 수 있도록 했다.
선원의 청규(淸規)는 엄하여 파계.사행 등 모든 폐습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율장에 따라 안거기간 중에는 일체 동구 밖에는 나갈 수 없으며, 오직 부모나 스승의 중병이나 사망 시, 그 밖의 부득이한 일이 있을 때만 조실의 허락을 얻어 외출할 수 있다. 만약 선원 자체에서 정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3차례 권유하고 이에 불응하면 퇴방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결제의 시작 7일, 해제 직전의 7일, 결제와 해제의 중간인 반살림 때의 7일 동안은 전혀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며, 매월 1일과 15일에는 조실이 상당하여 설법을 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전통은 현재에도 거 의 그대로 준수되고 있으나, 옛날처럼 강원의 대교과를 마친 뒤 선원에 들어가는 전통은 현재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강원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선원에 들어가서 20하안거를 수행하고 법랍이 20년 이상 되어야만 대선사.대교사의 당호를 부여받을 수있었다. 또 10년의 법랍이 있어야만 주지 자격이 주어졌다. 즉 한국불교의 근간이 참선 수행과 선원에서의 생활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스님들의 법호나 법랍 공부도 모두 선 수행을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선원 생활의 전통은 일제의 한국불교 말살 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에는 세계 유일의 선종중심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그 근저에는 스러져가던 한국의 간화선 전통을 되살린 근대 선불교 중흥조인 경허스님을 비롯해 만공스님, 용성스님, 동산스님, 금오스님, 효봉스님, 성철스님, 전강스님, 향곡스님 등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대선사들과 오늘날에도 전국 제방 선원에서 용맹정진하는 납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선원은 총림에 해인사 해인총림선원, 송광사 조계총림선원, 통도사 영축총림선원, 수덕사 덕숭 총림선원, 백양사 고불총림선원을 비롯, 조계종립 특별선원인 봉암사 태고선원 등이 대표적이다. 비구니 선원역시 비구선원 못지않은 용맹정진으로 유명하다. 비구니 선원은 조계종립 특별비구니선원인 석남사 정수선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미들이 4년간 선 수행을 하는 동화사 기본선원이 있다.
한국선원은 그 정진의 기강이나 노력, 시간 등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다운 불교 수행처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선원에는 한국의 선불교를 배우는 벽안의 외국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외국인 전용 선원도 생겨났는데 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이 대표적이다.
선원은 결제가 끝나면 해제와 동시에 조실을 제외한 모든 직책이 소멸되며 선객수좌스님들은 각자의 인연 사찰로 돌아가거나 자유롭게 만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해제이후에도 남아 3년 5년 등 일정기간을 정해두고 산철 없이 결제에 들어가기도 한다. 박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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