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사 하안거 수행 마무리]모든걸 버리니 부처님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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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15일 (금요일) 18 : 02 동아일보
만월(滿月)에 가까운 달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빛나던 12일 오전 3시. 울산 가지산에 있는 석남사 금당선원의 비구니들은 기상을 알리는 도량석(道場釋) 목탁소리가 울려 퍼지자 조용하면서도 민첩하게 잠자리를 정리했다.
30분 뒤 그들은 선방에서 108배 대참회(절을 한 번씩 하며 참회하는 것)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108배를 마친 뒤 2시간 동안 입선(入禪).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스님들은 숨 쉬는 것마저 잊은 듯 방안에는 ‘우레 같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울산 석남사는 비구니 사찰로 경북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조계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돼 있다. 이번 하안거에는 금당선원과 정수선원에서 24명씩 48명이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화두를 꿰뚫기 위해 하루 20시간씩 가행정진(加行精進)했다. 이들 중 20명은 하안거와 상관없이 1년 결사(1년 동안 일주문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하는 것) 중이다.
참선을 마친 이들은 잠시 후 강선당(講禪堂)에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공양을 돌려 나눌 때마다 합장을 하며 부처님에게 공덕을 올리는 독송이 계속됐다. 가사장삼을 차려입고 식탁 없이 방바닥에 앉아 발우공양을 하는 ‘법공양’은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풍습. 6·25전쟁 이후 폐사가 되다시피 한 석남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홍(仁弘·1997년 작고) 스님이 ‘중답게 밥 먹는 것도 수행’이라며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문 없는 관문’을 타파하기 위한 3개월간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 전날인 11일 이곳에서 ‘산사 음악회’가 열렸다. 합창 바이올린 기타 연주 등이 흥겹게 어우러진 음악회를 보기 위해 스님과 신도 500여명이 대웅전 앞뜰에 모였다. 참선하는 도량에 웬 노래 소리였을까.
한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참선의 목적은 혼자 깨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번 음악회는 그동안 참선 잘 하라고 도와준 신도와 지역주민에게 자그마한 보답을 하기 위한 회향(回鄕)입니다.”
오전 9시 버스로 30분 거리의 통도사에서 열리는 하안거 해제법회에 참석하러 길을 나섰다. 걸망 하나 짊어지고 버스에 탄 비구니는 “수행을 하다보면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걸 알게 되고 ‘같이 헤쳐 나가자’며 더욱 정진합니다”라고 말했다.
30여년간 선원을 지켜온 현공 스님은 “참선은 깨달음을 위한 것이지만 그 본질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열심히 수행하는 수좌들을 보면 비구니 선지식(善知識)도 곧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울산=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