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나비효과" - 유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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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효과(연기법)
나는 누구일까?
근래 이런 물음을 묻는 영화들이 크게 늘고 있다.
주인공 에반은 해답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찾으려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의 연장이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나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바꾸고 싶은 것은 불안한 현실이다. 불행한 나이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법한 설정이다.
끔찍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에반. 그에게 남은 것은 기억의 파편들과 상처 입은 친구들. 에반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예전의 일기를 꺼내 읽다가 일기장을 통해 시공간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에반. 그것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악몽처럼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사랑 켈리와의 돌이키고 싶은 기억,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들을 고쳐 나간다.
그러나 과거를 바꿀수록 더욱 충격적인 현실만이 그를 기다릴 뿐, 현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데 과연 그는 과거를 바꿔 그가 원하는 현재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재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인가?
과거를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바뀜을 에반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의 조건과 현재의 결과, 이 영화는 그 사이에 관계를 나비효과(카오스 이론, 에드워드 로렌츠)로 설명하려 한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한번 하면, 그 결과로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불수도 있다.
아주 작은 원인이 예측할 수 없는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일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추정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다. 영화 나비효과는 시점을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 놓았다.
게다가 나비효과는 기상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현상일 뿐이다.
기상을 예측하는 일과 나를 예측하는 일은 아주 다른 일이다.
불교도 물론 나에 대하여 묻는다. 에반과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비효과에 비견할 표현으로 이숙(異熟)이라는 표현이 있다.
다르게 익는다는 말이다. 원인과 결과의 성질이 다르다는 말이다.
과거에 내가 지은 행위에는 선한 일도 있고, 악한 일도 있다. 선한 행위는 즐거움을 낳고, 악한 행위는 고통의 과보를 낳는다.
하지만 선한 행위와 즐거움의 과보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고, 그 사이에 변화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행위는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인 즐거움의 과보는 선하다고 하지 않는다.
금강경(金剛經)에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반복 된다는 말은, 같은 문제에 반복해서 집착한다는 뜻이 된다.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는지 모릅니다.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들었습니다.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하는 말이다. 그는 선지식을 새로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똑같이 50차례나 반복한다. 영화로 치자면 매우 긴 영화라고 하겠다. 영화에서는 이런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극적인 반전들을 집어넣는다.
자신의 삶에 선재동자의 구법기처럼 비슷한 효과들이 담겨 있다. 물을 때마다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무엇인가를 배우지만, 그래도 물음을 바뀌지 않는다. <나비효과>에서는 시간과 기억에 도전한다. 도전을 통해 찾으려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이다.나를 찾는 도전.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선재동자의 구법기와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카오스의 이론을 들이대면서 한 원인이 다른 원인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주인공 에반은 어른이 되어서 일기장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바꾼다. 과거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나 자신의 앞날이 바뀌는 것이다. 인과 관계를 알고 결과를 예측하면서 바꾸는 것은 카오스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누구일까?
근래 이런 물음을 묻는 영화들이 크게 늘고 있다.
주인공 에반은 해답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찾으려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의 연장이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나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바꾸고 싶은 것은 불안한 현실이다. 불행한 나이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법한 설정이다.
끔찍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에반. 그에게 남은 것은 기억의 파편들과 상처 입은 친구들. 에반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예전의 일기를 꺼내 읽다가 일기장을 통해 시공간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에반. 그것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악몽처럼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사랑 켈리와의 돌이키고 싶은 기억,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들을 고쳐 나간다.
그러나 과거를 바꿀수록 더욱 충격적인 현실만이 그를 기다릴 뿐, 현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데 과연 그는 과거를 바꿔 그가 원하는 현재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재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인가?
과거를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바뀜을 에반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의 조건과 현재의 결과, 이 영화는 그 사이에 관계를 나비효과(카오스 이론, 에드워드 로렌츠)로 설명하려 한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한번 하면, 그 결과로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불수도 있다.
아주 작은 원인이 예측할 수 없는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일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추정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다. 영화 나비효과는 시점을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 놓았다.
게다가 나비효과는 기상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현상일 뿐이다.
기상을 예측하는 일과 나를 예측하는 일은 아주 다른 일이다.
불교도 물론 나에 대하여 묻는다. 에반과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비효과에 비견할 표현으로 이숙(異熟)이라는 표현이 있다.
다르게 익는다는 말이다. 원인과 결과의 성질이 다르다는 말이다.
과거에 내가 지은 행위에는 선한 일도 있고, 악한 일도 있다. 선한 행위는 즐거움을 낳고, 악한 행위는 고통의 과보를 낳는다.
하지만 선한 행위와 즐거움의 과보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고, 그 사이에 변화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행위는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인 즐거움의 과보는 선하다고 하지 않는다.
금강경(金剛經)에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반복 된다는 말은, 같은 문제에 반복해서 집착한다는 뜻이 된다.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는지 모릅니다.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들었습니다.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하는 말이다. 그는 선지식을 새로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똑같이 50차례나 반복한다. 영화로 치자면 매우 긴 영화라고 하겠다. 영화에서는 이런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극적인 반전들을 집어넣는다.
자신의 삶에 선재동자의 구법기처럼 비슷한 효과들이 담겨 있다. 물을 때마다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무엇인가를 배우지만, 그래도 물음을 바뀌지 않는다. <나비효과>에서는 시간과 기억에 도전한다. 도전을 통해 찾으려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이다.나를 찾는 도전.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선재동자의 구법기와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카오스의 이론을 들이대면서 한 원인이 다른 원인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주인공 에반은 어른이 되어서 일기장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바꾼다. 과거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나 자신의 앞날이 바뀌는 것이다. 인과 관계를 알고 결과를 예측하면서 바꾸는 것은 카오스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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