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달마야 놀자/달마야 서울가자'- 유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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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놀자
‘달마야 놀자’는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이고 깡패와 스님들의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숨은 의미가 있는 듯도 한 영화이며 숨겨진 삶의 메시지가 있다. 영화 중반부에서 제시한 <구멍 난 독에 물 채우기> 시합이 그것이다.
<그 독을 누가 먼저 채우느냐?>의 제시는 영화 속에서는 별로 심각하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는 몇 가지 황당한 내기 중의 하나로 등장 하지만, 3천배, 3‧6‧9게임이나, 고스톱(화투), 잠수 오래 하기 등의 내기와는 사뭇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달마야 놀자>의 <구멍 난 독에 물 채우기>는 질문의 형식을 띤 화두(話頭)의 상징이다. 이는 불교적인 의미에서 무한한 깨달음 앞에 선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질문이다. 막을 수 없는 구멍 난 독은 유한한 존재이며, 채워지지 않는 물은 깨달음에 비유된다.
득도의 문턱에서 노스님이 던진 선문답의 화두(話頭)와도 같은 이 물음을 듣고 스님들이 독 안에 들어가서 합장하고 소승의 몸이 물과 다르지 않으니‧‧‧.라고 대답했으나 노스님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열심히 독에 물을 부어 보기도 하고, 독에 들어가 몸으로 채워 보기도 하고, 몸으로 구멍을 막아 보기도 하는 시도는 불교적 깨달음의 과정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도들은 완전한 진리에 이르는 방법론으로서는 모두 실패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깡패인 재규의 기지로 그 물음은 해결된다. 재규는 “그냥 독을 물 속에 던졌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거기에서 큰 깨달음을 본 노스님은 놀라워한다.
“그 놈, 눈 한번 시원하게 뚫렸다.”고 말한 노스님은 이미 첫 대면에서 재규의 맑은 영혼을 꿰뚫어 보고 게임을 통해 그의 내면에 잠재된 불성을 확인한 것이 아닐까? 깨진 독에 대하여 <달마야 놀자>가 제시한 진정한 답은 무엇일까?
노스님이 깨달은 자(覺者)라는 암시는 노스님이 재규를 처음 대면하던 장면에서부터 나타난다. 비장하게 마치 상대편 조폭 두목과 협상하러 온 것처럼 긴장된 얼굴로 질문하는 재규에게 노스님은 손주를 대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문득 뜬금없이밥은 먹었냐?라고 질문함으로써 재규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노스님의 동문서답(東問西答)은 선사들의 일화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밥은 먹었냐?” “네” “그럼 양치질해라”와 같은 유명한 화두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화두들은 곧 “평상심이 곧 도이다(平常心是道)”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깨달음은 때를 정해 놓고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생의 순환은 모든 것을 흘러가게 만든다. 노스님은 좌선 중에 열반함으로써 실천적 해답을 보여준다. 깡패인 재규가 독을 물 속에 던진 것처럼 큰스님도 자신의 생명을 무한한 無의 품에 던진 것이다. 유한한 존재를 무한한 진리인 공(空)의 품에 던지는 것, 다시 말해서 죽음이야말로 열반(Nirvana)에 이르는 가장 완전한 방법론이다. 깨진 독은 물 속에서만 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 이것이 <달마야 놀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법론이며, 존재론적 해답이다.
달마야 서울가자
영화 ‘달마’시리즈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이다.
<달마야 놀자>에서는 화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달마야 서울가자>의 화두는 쏟아진 염주알을 손 안대고 담기이다. ‘달마야 놀자’는 스님이 아닌 건달 재규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달마야 서울 가자’에서는 서울에 오게 된 청명스님이 절에 있던 노보살에게 들은 화두를 가지고 로또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전편에서 삼천배, 물속에서 오래 버티기, 고스톱, 369게임등 절에서 산에서 할 수 있는 게임과 세속의 사람들이 재미로 하는 여러 가지 게임들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스님과 조폭 사이의 대결구도를 형평을 두고 팽팽함을 유지 하였던 것에 비해 속편에서 벌어지는 게임은 훌라후프 오래 돌리기, 노래방 점수 많이 올리기, 폭탄주 오래 마시기 등 세속에 맞는 게임을 절묘하게 설정하여 스님vs조폭 간에 팽팽함을 유지하였다. 전편 ‘달마야 놀자’에서 팽팽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중심에 큰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자칫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을 법한 그들의 대결에 팽팽함을 유지시켜 주고 중립을 지켜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큰스님의 존재는 선가(禪家)에서 수행자들을 지도 해주고 이끌어 주는 선지식과 같이 화합과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달마야 서울가자’에서는 잠시 등장하는 노보살님이 전편에서 큰스님이 하였던 중심역할을 했었더라면 영화가 좀더 중심을 잡고 현명한 대결 구도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보살님의손을 쓰지 않고 흩어진 염주를 깡통 안에 넣을 수 있냐?라는 영화 서두에 던져진 화두(話頭)는 말미에 로또 복권 영수증을 놓고 동자승을 통해 해답을 얻는 대목에 이르러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드림시티라는 상가 옥상에 지어진 무심사는 화두의 해답을 상징한다. “손을 쓰지 않고 흩어진 염주를 깡통 안에 넣을 수 있냐?”라는 화두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인 ‘널리 사람을 복되게 한다’ 혹은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선한 일을 하여 그것이 모여 질 수 있도록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종반부에 서로 로또 복권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다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 버린 법당 안에서 청명스님의 느닷없는 행동(로또를 찢어 버린 것)은 욕망을 끊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점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랩(rap)으로 바뀌어 부르는 장면에서는 불교도 대중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요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달마야 놀자’는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이고 깡패와 스님들의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숨은 의미가 있는 듯도 한 영화이며 숨겨진 삶의 메시지가 있다. 영화 중반부에서 제시한 <구멍 난 독에 물 채우기> 시합이 그것이다.
<그 독을 누가 먼저 채우느냐?>의 제시는 영화 속에서는 별로 심각하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는 몇 가지 황당한 내기 중의 하나로 등장 하지만, 3천배, 3‧6‧9게임이나, 고스톱(화투), 잠수 오래 하기 등의 내기와는 사뭇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달마야 놀자>의 <구멍 난 독에 물 채우기>는 질문의 형식을 띤 화두(話頭)의 상징이다. 이는 불교적인 의미에서 무한한 깨달음 앞에 선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질문이다. 막을 수 없는 구멍 난 독은 유한한 존재이며, 채워지지 않는 물은 깨달음에 비유된다.
득도의 문턱에서 노스님이 던진 선문답의 화두(話頭)와도 같은 이 물음을 듣고 스님들이 독 안에 들어가서 합장하고 소승의 몸이 물과 다르지 않으니‧‧‧.라고 대답했으나 노스님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열심히 독에 물을 부어 보기도 하고, 독에 들어가 몸으로 채워 보기도 하고, 몸으로 구멍을 막아 보기도 하는 시도는 불교적 깨달음의 과정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도들은 완전한 진리에 이르는 방법론으로서는 모두 실패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깡패인 재규의 기지로 그 물음은 해결된다. 재규는 “그냥 독을 물 속에 던졌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거기에서 큰 깨달음을 본 노스님은 놀라워한다.
“그 놈, 눈 한번 시원하게 뚫렸다.”고 말한 노스님은 이미 첫 대면에서 재규의 맑은 영혼을 꿰뚫어 보고 게임을 통해 그의 내면에 잠재된 불성을 확인한 것이 아닐까? 깨진 독에 대하여 <달마야 놀자>가 제시한 진정한 답은 무엇일까?
노스님이 깨달은 자(覺者)라는 암시는 노스님이 재규를 처음 대면하던 장면에서부터 나타난다. 비장하게 마치 상대편 조폭 두목과 협상하러 온 것처럼 긴장된 얼굴로 질문하는 재규에게 노스님은 손주를 대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문득 뜬금없이밥은 먹었냐?라고 질문함으로써 재규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노스님의 동문서답(東問西答)은 선사들의 일화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밥은 먹었냐?” “네” “그럼 양치질해라”와 같은 유명한 화두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화두들은 곧 “평상심이 곧 도이다(平常心是道)”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깨달음은 때를 정해 놓고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생의 순환은 모든 것을 흘러가게 만든다. 노스님은 좌선 중에 열반함으로써 실천적 해답을 보여준다. 깡패인 재규가 독을 물 속에 던진 것처럼 큰스님도 자신의 생명을 무한한 無의 품에 던진 것이다. 유한한 존재를 무한한 진리인 공(空)의 품에 던지는 것, 다시 말해서 죽음이야말로 열반(Nirvana)에 이르는 가장 완전한 방법론이다. 깨진 독은 물 속에서만 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 이것이 <달마야 놀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법론이며, 존재론적 해답이다.
달마야 서울가자
영화 ‘달마’시리즈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이다.
<달마야 놀자>에서는 화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달마야 서울가자>의 화두는 쏟아진 염주알을 손 안대고 담기이다. ‘달마야 놀자’는 스님이 아닌 건달 재규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달마야 서울 가자’에서는 서울에 오게 된 청명스님이 절에 있던 노보살에게 들은 화두를 가지고 로또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전편에서 삼천배, 물속에서 오래 버티기, 고스톱, 369게임등 절에서 산에서 할 수 있는 게임과 세속의 사람들이 재미로 하는 여러 가지 게임들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스님과 조폭 사이의 대결구도를 형평을 두고 팽팽함을 유지 하였던 것에 비해 속편에서 벌어지는 게임은 훌라후프 오래 돌리기, 노래방 점수 많이 올리기, 폭탄주 오래 마시기 등 세속에 맞는 게임을 절묘하게 설정하여 스님vs조폭 간에 팽팽함을 유지하였다. 전편 ‘달마야 놀자’에서 팽팽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중심에 큰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자칫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을 법한 그들의 대결에 팽팽함을 유지시켜 주고 중립을 지켜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큰스님의 존재는 선가(禪家)에서 수행자들을 지도 해주고 이끌어 주는 선지식과 같이 화합과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달마야 서울가자’에서는 잠시 등장하는 노보살님이 전편에서 큰스님이 하였던 중심역할을 했었더라면 영화가 좀더 중심을 잡고 현명한 대결 구도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보살님의손을 쓰지 않고 흩어진 염주를 깡통 안에 넣을 수 있냐?라는 영화 서두에 던져진 화두(話頭)는 말미에 로또 복권 영수증을 놓고 동자승을 통해 해답을 얻는 대목에 이르러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드림시티라는 상가 옥상에 지어진 무심사는 화두의 해답을 상징한다. “손을 쓰지 않고 흩어진 염주를 깡통 안에 넣을 수 있냐?”라는 화두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인 ‘널리 사람을 복되게 한다’ 혹은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선한 일을 하여 그것이 모여 질 수 있도록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종반부에 서로 로또 복권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다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 버린 법당 안에서 청명스님의 느닷없는 행동(로또를 찢어 버린 것)은 욕망을 끊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점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랩(rap)으로 바뀌어 부르는 장면에서는 불교도 대중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요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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